얇은 벽 너머로 들려온 말들
어느 날 밤이었다.
달빛은 차고, 골목은 조용했고, 나는 조용히 창을 닫으려다 그만 작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이웃집에서였다.
문 너머로, 벽 너머로, 낮게, 조심스럽지만 날카롭게 날아든 말들.
“왜 늘 나만 이래야 해.”
“나는 뭐, 편한 줄 알아?”
익숙했다.
누군가 참았고, 누군가는 몰랐고, 결국 두 사람 다 외로워진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달빛 아래,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어쩌면 저 창 하나하나마다
이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는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말하지 못한 진심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감정이 폭발할 땐 뇌가 이미 지쳐 있다는 뜻이라고.
마음속 에너지가 바닥났고,
주의를 쓸 여유가 없어서
결국 가장 단단한 감정인 분노로 반응한다고.
나는 이런 걸 시인의 말로 바꾸어 적는다.
“사람은 때로, 감정을 입고 욕구를 숨긴다.”
누군가는 존중받고 싶어서 소리를 높였을 테고,
누군가는 함께 있고 싶어서 등을 돌렸을 것이다.
참 이상하다.
사랑해서 시작한 사이인데,
가장 필요한 말은 왜 늘
입술 밖으로 떠나지 못하는 걸까.
다정한 질문 하나, 그곳에서 회복이 시작된다
조금 있다가, 그 집 불이 꺼졌다.
어쩌면 싸움은 끝났고, 어쩌면 대화도 없이 각자 등을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5분만 멈췄다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
이 두 문장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안다.
살다 보면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그 갈등을 보는 눈은 달라질 수 있다.
상대의 말투보다 그 말투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보려는 사람.
그 사람은 이미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날 밤, 나는 시 하나를 썼다.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지만
이 문장만은 또렷이 적었다.
“당신의 화는 당신의 외침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돌아오는 존재, 사람
다음날 아침,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아이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마치 작은 기적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 다시, 서로에게로 돌아오는 존재니까.
그러니 오늘도,
우리가 먼저 마음을 묻자.
“당신은 지금, 어떤 것이 필요하세요?”